역사에 남을 위대한 여성

세계최고의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4/8)

간천(澗泉) naganchun 2023. 8. 31. 03:05

세계최고의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4/8)

 

 

 

이탈리아에서의 활동

 

1947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단에 입단하고, <청교도 (I puritani)>의 단역으로 캐스팅되었으나 주인공 엘비라 역으로 낙점된 마르게리타 카로시오(Margherita Carosio)가 독감에 걸려, 예정에 없이 그가 캐스팅되었다.

대역으로 투입된 칼라스는 3일의 연습으로 무대에 섰는데 호평을 받았다.

이어 레나테 테발디가 갑자기 아프게 되어 아이다의 주연 아이다 역을 맡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때 스칼라 오페라단은 칼라스에게 아이다 역의 대역으로 투입했고, 아이다 공연으로 크게 호평을 받으면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청교도>의 엘비라 역, <아이다>의 아이다 역, <토스카 (Tosca)>의 토스카 역 등을 소화해낸 뒤 <노르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등의 주인공역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토스카> 공연 중에는 열연하던 중 가발에 불이 붙었으나 끝까지 아리아를 부르기도 했다.

 

1948년 베니스, 로마, 제노바 등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투란도트>, <레오노라>를 공연하고 1948년 연말에는 <아이다>와 <노르마> 등을 주로 하였다.

19481130일 피렌체의 테아트로 코무날레에서 공연한 <노르마>는 흥행하였다. 1949년 초, 브룬힐데의 브룬힐데 역을 11일간 하였다.

 

1949년에는 베니스에서 활동하였으며 421일 베로나에서 메네기니와 정식 결혼식을 올린 뒤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연하였다. 이후 메네기니의 후원으로 2년간 돈 걱정 없이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공연을 하였다. 194911월에는 칼라스의 최초의 판매용 음반을 체르타 음반사에서 녹음했다. 비용은 메네기니가 부담하였다.

 

19503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레나타 테발디 대신 대역으로 투입되어 <아이다>의 타이틀 롤을 불렀으나 라 스칼라 극장 매니저 안토니오 기린겔리는 칼라스를 외면하였다. 19511월 라 스칼라 극장의 시즌 개막공연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1951년부터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을 중심으로 활약하여 <노르마>, <안나 볼레나>, <메데아> 등 발굴되지 않았던 명작에 출연하였으며, 1952년에는 코벤트 가든의 초청을 받아 <노르마>, <토스카> 등을 선보였다.

 

1954111일 시카고 오페라 극장에서 상영된 <노르마(Norma)>에서 노르마 역으로 미국에서 데뷔했고, 19561029일 뉴욕 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상영된 <노르마>에서도 캐스팅되었다.

이때 타임지는 어머니 에방겔리아와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칼라스는 어머니 에방겔리아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빼앗아갔다고 자주 비난했고, 두 번 다시는 어머니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1957년 이후로는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서 활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