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물을 보면 시원하다 - 거대한 물덩이는 더 시원하다
2020 ‘내가 쓰고 싶은 특집’ ‘반지의 제왕’을 소환하다
(38) 물을 보면 시원하다 - 거대한 물덩이는 더 시원하다
지상으로는 바다 바위틈에 자라는 거북손처럼 하늘 향해 치솟는 빌딩숲, 그 아래 지하 공간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그 어떤 장치나 다양한 시도 도전이 필요하다.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오게 하려면 굉장한 쇼킹한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예전에 도심 속 한가운데 강남 삼성동 코엑스 인근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냈었다. 삭막한 도심 속에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방법을 궁리하는 일 말이다.
예를들어, 한 여름에는 북극 에스키모의 이글루를 재현해보고, 물속에 불빛이 번쩍 번쩍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해보기도 하고, 살아있는 청보리를 흙 채 날라다가 건물 안에 청보리 밭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뉴미디어기기의 발달로 거대한 벽면을 대형 디스플레이로 도배를 한 공간도 등장한다. 그 화면에는 거대한 자연이 흘러나온다. 도심 속 한가운데서 가장 그리운 것은 자연인 것 같다.
이번에 정말 흥미로운 것을 접했다. 거대한 유리 상자 안에 바다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그런 광경을 본 것이다. 입체적이었다. 시원했다. 착시현상으로 입체감을 느끼게 해주는 아나모픽(Anamorphic) 방식으로 제작된 디스트릭트의 ‘Public Media Art # 1_ WAVE’ 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프로도가 흑기사들에게 쫒고 쫒기는 추격전 속에서 계곡의 물이 불어나고 터지면서 마치 백마들이 달려드는 모양새의 영상이다.
바로 그 순간 뭔가 으르렁거리며 쇄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바윗돌을 굴리며 쏟아지는 엄청난 물소리였다. 프로도의 흐릿한 눈에 발밑의 강물이 부풀어 올라서 수많은 물결을 일으키며 흐르는 것이 보였다. 높은 물결의 머릿 부분은 하얀 불꽃처럼 번뜩였다. 한순간 프로도는 거품 같은 갈기를 휘날리며 쇄도하는 백마를 탄 백기사들 무리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직 여울 한복판에 있던 세 흑기사는 그대로 물에 휩쓸려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성난 물거품 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뒤에 남아 있던 자들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반지의 제왕 1권 p. 338>
시원하다. 압도적이다.
이 여름 입을 가리고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눈으로라도 시원하게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