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남이 차려준 밥상
2020 ‘내가 쓰고 싶은 특집’ ‘반지의 제왕’을 소환하다
(19) 남이 차려준 밥상
유명 쉐프들의 요리 대결과 각종 먹방 프로그램이 판을 치는 세상에, 어느 신문사에서 노동자의 밥상에 대해서 시리즈로 연재하는 것을 보곤 한다.
꼭두새벽에 일을 나가는 사람들의 빵.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고향 반찬을 곁들인 단출한 밥상, 타워크레인 위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자의 먹거리. 남들의 점심 밥을 차리고 배식을 도우는 단체급식소의 오후 늦은 밥상. 그들의 밥상은 단체 급식에서 남은 찬으로 차려진다. 종이박스나 빈병을 모으며 살아가는 할머니의 빵과 우유. 무료급식소에서 따신 국밥을 먹는 긴 행렬. 이른 아침 첫 버스 운전자들의 도시락. 전통 시장에서 나물을 파는 아주머니들의 밥상. 농터에서 맞이하는 점심상 등등.
차려진 찬이 허술하다고 소박하다고 해서 노동자의 밥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동자의 밥상은 확실히 산해진미는 아니다. 가정식백반처럼 따스한 느낌도 아니다. 단출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대부분 식은 밥이다.
부모님의 밥상도 대체로 소박하다. 많이 드시지도 않거니와 식탐도 없으시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의 밥상은 아니다. 찬이 하나여도 따스하기 때문이다.
하루 세끼,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는 시간대에 끼니를 먹는 것이 복이고 제대로 밥 국 차려놓고 먹는 것도 복이고, 여럿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먹는 것이 복이다.
하루 세끼를 먹든지 두 끼를 먹든지 다이어트를 한다고 一日一食을 하든지 간에, 본인의 의지대로가 아닌, 남을 챙겨주고 나서야 먹을 수 있는 경우의 직업군이 많다. 누군가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은 미리 먹거나 아예 늦게 먹거나 할 것이다.
나도 예전에 잠시 남들 챙기는 일을 하면서 오후 2시경에 점심을 먹은 경우도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2시까지 텀이 길어서 배가 고픈 것을 참고 있어야 했다. 익숙해지면 괜찮겠지만 지루하고 서글펐다. 그때의 기분은 아마도 다음과 같지 않을까? 기꺼이 감내하는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그래요. 아주 지루했지요. 하는 일 없이 무작정 기다리는 데도 이제 지쳤어요. 난 주인께서 간달프며 왕자며 또 다른 고관들과 의논을 하는 지루한 몇 시간 동안 그분 방문 앞에서 무작정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오. 게다가, 난 남들이 식사하는 동안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시중을 드는 데는 익숙지 않단 말이거든요. 그런 일은 호빗에겐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라오. 당신은 분명 내가 그런 일을 영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할 테죠? <반지의 제왕 5권p.107>
그런데 지금은 남들이 주로 점심시간이라고 하는 시간대에 점심을 먹게 되었다. 남이 차려준 밥상을 대하니 좋다. 그래서 배식을 하는 줄이 길어도 감사하다.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을 위해서 국을 한 그릇 한 그릇 떠 주는 배식 담당자분들(조리사)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