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신들의 회의와 죽음
제16장=신들의 회의와 죽음
기분 좋게 잠에서 깬 엔기두는 불가해한 꿈을 꾸었다. 신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엔기두는 길가메시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다. <나의 친구여, 들어주게나. 내가 간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주게.> <어떤 꿈을 꾸었는가. 나의 친구 엔기두여.> 길가메시가 답했다. <절대신 아누, 대지의 신 엔리루, 물의 신 에아. 그리고 우리의 태양신 샤마슈가 모여서 회의를 하였다. 산들이 무슨 회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 엔기두가 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기묘한 것이었다. 먼저 최초로 대지의 신 엔리루가 절대신 아누를 향하여 말하였다. <그들은 천우를 죽였다. 그 전에는 훈바바를 죽였다. 신이 창조한 것을 둘이나 죽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벌로서 죽어야 한다. 엔기두가 죽어야 한다.> 그러자 절대신 아누가 말하였다. <향목의 숲을 침범한 길가메시가 죽어야 한다.> 그에 대하여 대지의 신 엔리루가 이의를 제기했다. <길가메시가 죽어서는 안 된다. 엔기두가 죽어야 한다.> 그러자 태양신 샤마슈가 큰 소리로 대지의 신에게 반대했다. <그들에게 죄가 없다. 그들은 나의 명령을 받아서 훈바바와 천우를 죽인 것이다. 그러한데 죄 없는 엔기두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이 태양신의 말에 대지의 신 엔리루가 노하여 답했다. <당신이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을 비호하여 그들의 편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물의 신 에아가 <역시 두 사람 중에 누가 죽어야 하는가.> 하고 입을 열었다. 신들의 회의의 방향은 점차 정해졌다. <엔기두는 죽어야 한다.> 절대신 아우가 최후로 선언하고 회의는 끝났다. <나의 친구 길가메시여, 이 꿈은 어떤 의미일까.> 엔기두가 불안한 마음으로 길가메시에게 물었다. 길가메시는 이에 대답할 수가 없어서 단지 잠자코 있을 뿐이다. 꿈을 말한 엔기두는 그 날 쓰러졌다. 제1일째 그저 누워 있을 뿐이다. 제2일 째 엔기두는 슬픔으로 <저 창부와 만난 것이 나의 재앙을 가져온 것이다. 그게 틀림이 없다.> 하고 산에서 만난 창부를 저주하였다. 천상에서 엔기두의 말을 들은 태양신 샤마슈가 엔기두를 달랬다. <엔기두여, 어찌하여 창부를 저주하는가. 그는 네게 빵을 먹는 방법, 술을 마시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네게 멋진 옷을 주지 않았느냐.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게는 좋은 친구 길가메시를 만나게 해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창부를 저주하느냐.> 태양신 샤마슈는 다시 말을 하였다. <너의 친구 길가메시는 너를 훌륭한 침대에 눕히고 간병해주고 있지 않으냐. 우루쿠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너의 병을 슬퍼하고 있지 않으냐. 혹시 네가 죽더라도 나는 사람들이 너의 일을 잊지 않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를 위하여 사자의 가죽을 입고 초원을 방황 할 것이 아니냐.> 이 태양신 샤마슈의 비탄에 빠진 말을 듣고 엔기두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제3일째 제4일째도 엔기두는 병세가 더 중해갔다. 제5일째에서 제10일째 도 점점 쇠해갔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창부의 꿈, 향목의 숲의 꿈, 그래서 최후로 저승으로 가는 꿈을 꾼 것이다. 엔기두의 병세는 조금도 좋아지지는 않고 제11일째를 맞았다. 병세는 더 위독해졌다. 제12일째 엔기두는 길가메시를 불렀다. <나의 친구여, 이슈탈의 저주가 나를 병마로 덮었다. 나는 전장에서 쓰러진 것처럼 축복을 받으며 죽을 수가 없다. 나는 저주를 받아서 겁쟁이처럼 죽게 되었다. 지금은 그것이 슬프다.> 그렇게 말하고서 엔기두는 죽었다. 길가메시의 두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나의 친구여, 나의 형제여, 사랑하는 형제여, 왜 형제는 나를 남기고 먼저 죽는가. 형제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형제를 두고 나는 죄가 없다는 것인가. 왜 나의 사랑하는 형제의 건강한 모습을 내 눈으로 다시 볼 수 없다는 말인가.> 길가메시의 통곡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