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심리전의 전사 <도쿄 장미>이야기
태평양전쟁 심리전의 전사 <도쿄 장미>이야기
-대미 모략 방송 아나운서의 기구한 운명-
동경 장미
자살 특공대 공격
1945년 2월 미군이 유황도의 공략을 개시한 이래 수일이 경과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미군은 일본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놀라울 정도의 출혈을 강요당하고 있어서 수뇌부에서는 머리를 앓고 있었다. 특히나 가미가제라는 자살특공대의 공격이었다.
특공기는 레이더가 잡히지 않게 해면 가까이를 기는 듯이 날아왔다. 벌레 한 마리 끼어 들 수 없을 정도의 농밀한 대공 포화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돌입해 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죽기를 각오한 것이라서 떨어뜨려도 뒤에서 계속하여 달려드는 것이었다. 마치 샘솟는 망자의 무리처럼 보였다.
그것을 미국인으로서 본다면 자신들의 상식을 넘는 몸서리치는 이상 행동이었다. 많은 미군 병사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자살 공격에 몸서리치는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중에는 특공기가 함교에 충돌하여 가루가 된 기체의 파편과 함께 타고 있던 파일럿의 피투성이의 살점을 보고 발광한 병사도 있었다.
이렇게 광적인 비참한 상태가 계속되자 인간의 심리는 극한으로 내몰렸다. 곧 광기와 정기의 틈바구니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갔다.
이것이 전쟁의 광기라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전쟁은 또 하나의 신경전이라는 형태로도 행해졌다. 곧 상대의 심리 속에 들어가서 완강한 심리를 누그러뜨리고 사기를 빼어버리려는 것이다.
<제로 아와> 방송
그날 오후 유황도 연안에 정박하고 있던 제7함대 항공모함 키티호크의 승조원은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있었다. 선내의 마이크에서 어떤 방송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윽고 재즈풍의 음악을 타고 여성 아나운서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허스키로 조금은 섹시한 울림을 띠고 있는 듯하였다. 내일은 어찌 될 것인지 모르는 몸으로 울적한 상태의 그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심각한 기분을 누그러뜨리는 듯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조금 그들로서는 구원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절망의 늪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의 허스키이고 쇠뇌적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을 간질이는 기묘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은 젊은 남자만이 가진 전장심리가 작용하여 여성을 필요 이상으로 미화시키고 있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그들의 기분은 한층 복잡했다.
어떻든 묵묵히 식사를 하면서도 시종 그들의 머릿속에 괴상한 매력을 띤 여성 아나운서의 소리가 걸리기 때문이다.
“미군 해병대 여러분 언제나 근무하시느라 수고하십니다. 큰 배 속은 쾌적하겠지요. 그러나 곧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버린다고 생각하면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좋은 날씨인데요. 몇 사람의 수병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인지요. 섬에는 많은 일본병사가 당신네들을 죽이려고 겨누고 있답니다. 게다가 자살 공격기도 많이 준비되어 있답니다. 미군 수병 여러분 이런 허무한 전쟁에서 목숨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고아가 되기보다 지금 곧 어머니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영리한 것이 아닐까요.”
이 매혹적인 허스키 보이스는 해병들 일상의 일들을 잘 알고 있는 듯한 이야기이다. 어떤 때는 일단의 이등상사의 시골 가족들의 출생부터 소개하기 시작하여 날마다의 스케줄 내용까지에 미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내일 당신네들의 배는 공격당할 것이라 말하면 이튿날에는 실제로 공격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거듭되자 마법의 구슬을 가지고 자기네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투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해병들의 다수는 두려움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 그녀가 사는 동네를 생각하게 하는 허스키 보이스에서 나오는 분위기로 무엇이라고 할 수 없는 독특한 친근감을 느끼는 자들도 많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허스키 보이스를 가진 임자는 말마다 자신을 <고아인 안>이라 하였는데 어느 새에 미군 병사들이 <동경 장미>라는 애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제로 아와> 방송의 실체와 동경 장미
이 방송은 <제로 아와>라 하여 태평양전쟁 하에서 일본군이 행한 연합군을 향한 대외 선전을 목적으로 한 NHK의 모략 방송이었다. 최초 이 방송은 <히노마루 아와>라 해서 연합군 포로 등에게 군부가 준비한 원고를 읽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히노마루 아와>라는 울림 자체가 도발적이고 역으로 적개심을 높일 수 없다는 데에서 후에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어떻든 그 목적은 전쟁에 대한 무의미함을 상대의 병사들의 마음에 심어주어서 전의를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최초의 방송은 1943년 12월 2일 오후 1시(일본 시간)에서 30분 간 방송하였다. 이후 종전 직전까지 방송하게 되었다.
이 무렵 미군 병사 중에는 일본에 가면 내가 먼저 <동경 장미>와 데이트를 한다고 하는 농담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만큼 <동경 장미>가 미군 병사들 사이에는 인기가 있었다. 마치 <동경 장미>가 그들로 본다면 카리스마적인 우상이었다. 남자라면 비록 적의 모략방송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여성 아나운서의 소리에 일종의 낭만을 느끼게 되는 것도 자연의 인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군 병사의 다수는 <동경 장미>를 한 번 보고 싶어서 누구나 일번으로 일본에 가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이러고서는 적군의 전의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사기를 높이는 것이었으나 군 당국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군은 <제로 아와>의 관계자를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어서 수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경 장미>를 비롯하여 스텝들은 전후 혼란 속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때 어느 통신사는 한 꾀를 생각하고 덫을 놓기로 하였다.
전 <제로 아와>의 아나운서, <동경 장미>가 취재에 응해준다면 5천 달러를 준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었다. 5천 달러란 당시로서는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파격적인 대금이었다. <동경 장미>와 단독 인터뷰에 성공하기라도 하면 천황과의 인터뷰에 맞먹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에 자신이 <동경 장미>라고 하는 한 사람의 일본계 여성이 나타났다. 작은 몸매에 부끄러워하는 듯한 눈매에 내성적인 느낌, 약간 모가 나는 얼굴 윤곽 소리는 목쉰 듯한 소리로 프로 아나운서의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과연 이 사람이 문제의 <동경 장미>인가 하고 누구나 의심한 것도 사실이다. 너무나 이미지와 실상과의 괴리에 낭패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바 도구리(戶栗)>라 하고 1916년 7월 4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일본계 2세였다.
<아이바>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재학 중 1941년 7월 병환 중인 숙모를 간병하기 위해서 조부의 고향인 나가노(長野)를 방문하기 위하여 일본에 왔다. 그녀는 양친의 교육방침에 따라 정식으로 일본어 교육도 받지 못하였고 미국인으로서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인의 생활양식이나 습관에 익숙하지 못하였다. 특히 미국에는 없는 <혼욕>이라든지 비위생적인 변소 등이 특히 익숙해질 수가 없어서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몇 번이나 편지를 보냈으나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운이 나쁘게도 미일 간에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에 남게 된 그녀는 잘하는 영어를 살려서 군 관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국적은 미국인인 채로였다.
이때부터 <아이바>는 경찰에서 국적을 일본으로 바꾸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완강히 이를 거절하였다. 그런 때문에 적성 외국인 취급을 당하여 경찰에서 몇 번이나 압력이 있었음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7월 4일이라는 미국 독립기념일에 태어난 <아이바>는 그녀가 탄생한 날을 긍지로 생각하여 마음까지 일본에 동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때에 일본국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종전 후 미국에서 재판에 걸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애국심이 장래 어긋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바>는 일본어 원고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는데 그러는 사이에 아나운서로 기용되어 연합군 병사를 상대로 원고를 읽게 되었다. 병사들이 남자라는 점에서 여성이라는 호소력이 기대된 것일 것이다. 역시 연합군 병사들의 마음속에 염전기분이 생기게 하여 전의를 상실시키기 위해서는 쇠뇌적인 달콤한 소리를 가진 여성 아나운서가 제격이라고 일본 군부는 생각한 것이다. 그 내용은 지금 생각해보면 음악과 말하기를 섞은 디스크 작키로서의 구성이었다.
그녀가 읽는 원고의 제재는 책이나 영화 등에서 폭넓게 취해졌다.
예를 들면 미국 역사는 종래 몬로주의에 바탕을 두고 타국과는 불간섭주의를 일관하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관계도 없는 아시아 나라의 문제에 간섭을 하는 것이냐?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라는 투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루어보기도 하고 반전소설을 각색하여 라디오 드라마조로 다루기도 하였다.
또 사실감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일본 각지에 있는 수용소의 포로의 소리를 취재하여 그들을 내용으로 원고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그녀가 말하는 내용이 개인만이 알 수 있는 사적인 것이기도 하여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 공포를 느끼기도 하였다.
원래 <동경 장미>는 <아이바> 한 사람만은 아니다. 여럿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듯이 병사들이 증언한 <동경 장미>의 목소리의 질은 <아이바>의 그것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병사는 달콤한 맛을 띤 허스키 보이스였다고도 하고 또 어떤 자는 저음으로 침착한 여성의 느낌이었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듣기만 하여도 쇠뇌적이고 섹시한 소리였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든지 <아이바>의 소리는 이들 특징과는 맞지 않는다.
그녀의 소리는 어떻게 보아도 섹시하다고는 할 수 없다. 허스키라기보다 오히려 카랑카랑한 소리에 가깝다. 그러면 참으로 <아이바>는 <동경 장미>였을까. 또 그녀 외에 해당하는 여성이 있었던 것일까?
자료에 의하면 <제로 아와>의 스텝에는 <아이바> 외에 13명의 여성 아나운서가 있었던 모양이다. 정식으로 <아이바>가 주도하고 다른 여성은 라디오 드라마 등 여성의 소리가 필요할 때에 또는 그녀의 형편이 나쁠 때에 보결로 일했던 것 같다. 그러면 역시 <아이바>가 <동경 장미>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아마도 전파를 탄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자로 하여금 제각기 여러 가지의 이미지로 각인 되고 그것이 증폭되어서 독자적인 매력으로 발전해갔는지도 모른다.
종전 4개월 전 당시의 중립국 일본계 포르투갈인 통신사원 <필립 다키노>와 결혼했다.
포르투갈인이라고 해도 포르투갈어도 말하지 못하는 일본 태생이었다.
<아이바>는 세다가야(世田谷)의 하숙에서 포로가 될 때까지의 짧은 기간 즐거운 결혼 생활을 한 것이다.
이리하여 이름을 대고 나타난 <아이바>였지만 여러 매스컴에 떠들어대기만 하고 결국 약속한 5천 달러는 받지도 못하고 역으로 반역죄로 체포되고 말았다.
<동경 장미>의 재판
당시의 신문(1948년경)의 톱기사에는 <동경 장미>라는 타이틀로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세상이 얼마나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 후 1년 정도 조사를 받고 수가모(巣鴨)의 구치소에서 지냈다. 그러나 운 좋게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비판의 소리가 본국 미국에서도 높아져서 다시 2년 후에 반역죄로 체포당하였다.
이 무렵 임신하고 있던 그녀는 남아를 순산하지만 산후에 즉사하였다.
아기의 죽음에 실망한 마음을 다스릴 시간도 없이 그녀는 체포되어 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고 남편하고도 헤어지게 되었다.
재판은 인종적 편견에 찬 것으로 배심원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이 재판에서 <아이바>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국가반역죄라는 오명을 쓰게 되고 금고 10년에 벌금 1만 달러가 선고되었다. 그에 더해서 미국 시민권마저 박탈당하였다. 모국 미국을 사랑한 나머지 완강히 귀화를 거부한 것인데 너무 지나친 언도였다. 전후의 미국 국내는 반일 감정이 최악이었다. 구 적국의 피를 받은 <아이바>는 많은 사람에게 내 보인 것이었다. <아이바>는 미국 땅을 밟자마자 남편과 아들을 전장에서 잃은 어머니들로부터 맹렬한 매도를 당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녀는 웨스트버지니아의 형무소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1956년 모범수로서 6년여로서 석방되었다. 벌금 1만 달러는 빚을 내고 재산을 팔아서 갚았는데 시민권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때문에 무국적인 <아이바>는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고 일본에 있는 남편의 입국도 거부당하여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종교인 가톨릭에 개종한 <아이바>는 규정에 의하여 이혼도 인정되지 않아서 호적상 부부인 채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바>는 이 무렵부터 마음을 굳데 닫아 모든 인간에게 이상 경계심을 품고 다가오는 어떤 사람과도 본심을 말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시민권 회복과 죽음
그러나 그 후 재판의 부당성이 지적되기도 하고 그녀에게 특사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서 전미국의 일본계 미국인들이나 주지사 캘리포니아 의회 의원 등이 그녀를 변호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77년의 포드대통령은 세론에 밀리어서 마침내 그녀에게 특사를 내렸다. 곧 <아이바>는 30년 이상이나 걸려서 시민권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된 <아이바>는 그 후 시카고로 이사하여 아버지가 창업한 수입 잡화점을 경영하며 만년까지 일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 9월 28일 뇌졸중으로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전쟁에 의하여 마음을 닫고 기이한 운명을 겪은 사람은 많다. 전쟁이 없었다면 그녀도 <동경 장미>라 불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기구한 운명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도 국가끼리의 전쟁의 불쌍한 희생자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