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구체적 영상이 떠오르도록 하여 추상론은 금물
13 구체적 영상이 떠오르도록 하여 추상론은 금물
다음의 스피치를 들어보세요. 매력적인가요?
<행복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주관적인 것이니까 일단 정의가 내려지면 다시는 뒤집지 못한다든지, 내려진 정의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인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원리와 같은 것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을 자각하는 장면을 자세히 고찰해보면 그 인물의 가치관에 비추어서 좋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의 양적측면이 증가하였다고 실감할 수 있을 때, 그것을 인간은 행복이라고 해서 의식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공복을 채우는 것으로 가치를 두는 사람이 어제보다도 오늘이 보다 많은 식물을 섭취하였다고 한다면 그는 아마도 행복을 느끼겠지요. 공복의 차원을 넘어서 보다 맛이 좋은 감각에 가치를 구하는 사람은 어제보다 오늘 고급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때에 행복감을 가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권력이나 지위의 향상에 가치를 두는 인물이 승진을 이루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겠지요. 칭찬을 받는 것을 가치로 하는 인물은 겨우 단순한 타인의 풍평에도 귀를 기울여서 자신의 평가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환희에 전율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든 비교에 의하여 성립하는 행복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비교인만큼 보다 높은 상태와 비교하는 사태가 출현할 때 한꺼번에 불행을 맛본다는 매우 취약한 행복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에도 흔들림이 없는 참 행복관을 확립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놓으면 격조가 높습니다. 이것을 연연히 말한다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종 추상적이라서 듣는 사람의 뇌리에 영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자나 정치가의 연설에 매력이 있는 것이 드물다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특히 빈번히 사용되는 한자 숙어는 감동할 수가 없습니다. 눈으로 보면 웅변 같은 숙어라도 청각만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스피치는 구체적으로 쉬운 용어로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행복이란 사람 사람에 따라 다르지요. 언제나 이불 속에 있으면 행복한 사람도 있고, 눈이 뜨자마자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부부라면 큰일이겠지요. 우리 집 이야기입니다만 나는 일요일이라도 일찍 일어나면 컴퓨터에 앉아서 무엇인가 원고를 쓰면서--바보가 언제까지라도 잠을 자지--하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원래 행복이란 비교의 문제입니다. 돈이 없어서 만족하게 먹지도 못 하는 사람이 어쩌다가 공원에서 돈을 주워서 컵라면에다가 맥주를 실컷 마셨다면 그 날은 참으로 행복한 날입니다. 노숙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는 부자라도 어쩌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지금까지는 먹어본 일이 없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면 이것 또한 행복한 일입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계장이나 할 거야 하는 말을 듣고서 힘써서 조금 열이 오르기는 하여도 매주 부장의 골프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봄철 인사에는 과장이 된다면 그야말로 행복할 것입니다. 칭찬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 사원의 인기투표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꽤 많이 나온 모양인데 당신과 나는 대체 어디가 다르단 말인가. 부럽다는 말을 들을 때. 한턱 쓰게 하고 말한다면 기뻐서 한 턱을 내겠지요.
그러나 노숙자가 주운 돈을 모두 쓰고 나면 불행함을 느끼고, 맛있는 것을 먹은 부자도 후에는 허무함을 느낄 수 있고, 과장이 된 사람도 다른 동기도 과장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쓸쓸해질 것이고, 칭찬을 받은 사람도 2, 3명이 입을 모아서 요즘 평판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하게 되면 회사를 그만 두기도 합니다.
무엇인가 비교하여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적어도 40까지는 흔들리지 않는 행복관을 가지고 싶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어느새 50이 넘었습니다.>
스피치에서 추상론은 절대 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