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소재의 맛깔스러운 조리
9, 소재의 맛깔스러운 조리
조리사가 좋은 요리를 만들려면 먼저 일찍 일어나서 시장에서 좋은 재료를 입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이 스피치도 같습니다. 청중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는 스피치는 맛이 깊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아무리 화술이 뛰어나다해도 내용이 쓸모가 없으면 마치 잘 손질해서 썩은 고기로 조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리 맛이 좋을 이가 없습니다. 결국 좋은 스피치를 하려고 하면 일상생활 중에서 훌륭한 화제를 찾아내는 섬세한 감성이 필요합니다. 자그만 일이라도 빠뜨리지 않는 세심한 주의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청중에게 알릴만한 맛이 깊은 일들이 그리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리에 조금 연구를 해야 합니다.
--꽃무릇(상사화)이 피었습니다.-- 이것을
<내일은 추분날입니다. 논두렁에 빨간 꽃무릇이 피어있었습니다. 그 꽃무릇이란 것은 매년 같은 시기에 돌연히 피어서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신기한 꽃입니다.>
하고 말한다면 모처럼의 소재가 아깝습니다.
이렇게 조리해봅니다.
<고교시절 친구가 있었습니다.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30년 동안 해마다 연하장이 옵니다. 그다지 좋은 글씨는 아니지만 기세 좋은 글체의 연하장을 볼 때마다 기분은 고교시절로 돌아가서 멀리 있는 고향 경치가 떠오릅니다. 한 해에 한 번뿐인 엽서의 교환이지만 좋은 일이다 하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논두렁에는 꽃무릇이 피어있었습니다. 매년 가을철의 꽃무릇을 잊지 않고 같은 장소에 피어나는 붉은 꽃도 친구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꽃무릇은 달력보다 더 강력하게 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성묘라도 가려무나. 하고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하고 엮어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보기로 합니다.--
<길가에 고양이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깨우지 않으려고 살짝 지나가려는데 현관에 메여있던 강아지가 돌연히 나를 향하여 짖었습니다. 나는 놀라서 뛰었습니다. 고양이도 그 옆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꽤나 익숙한 것이겠지요.>
라는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이 조리해 봅니다.
<나는 올해 여름휴가도 남겼습니다. 아파트 단지의 어려운 살림을 살아왔으니까 때로는 휴가를 얻어도 좀처럼 쉴 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안정되지 않습니다. 한가히 쉬려고 온천엘 가도 한가히 쉬자, 쉬자 해서 더 피곤해 집니다. 며칠 전에도 출장지에서 땀을 흘리고 있노라니 처마 밑에서 고양이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좋겠네. 보는 쪽에서도 한가롭습니다. 고양이는 한가롭게 지내기 위하여 태어났을 것 같습니다. 나는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살그머니 옆을 지났습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커다란 개가 달려들었습니다. 메여있었으니까 다행이었습니다. 나는 놀라서 뛰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은 민첩합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보니까 고양이는 자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개도 대물입니다. 메여있기는 하지만 집지기로서의 제 할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이에요. 타고나는 것은 어쩔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개와도 같습니다. 직장에 메여있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땀을 닦으며 출장지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