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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25, 존 돌턴(John Dalton) 이야기 (9/10)

간천(澗泉) naganchun 2024. 12. 12. 02:54

25, 존 돌턴(John Dalton) 이야기 (9/10)

 

 

 

생활

 

존 돌턴 (출처: Arthur Shuster & Arthur E. Shipley: Britain's Heritage of Science, 런던, 1917)

그는 원자설을 제안하기 이전부터 과학계에서 유명했다. 1804년에는 런던 왕립 연구소에서 자연 철학 강사로 활동하였고, 1809년에서 1810년까지 다시 강의를 했다. 하지만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목소리가 분명하지 않고 설명도 명확하지 않아 강사로서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1810, 험프리 데이비가 돌턴을 왕립학회 회원으로 추천했으나, 돌턴은 경제적인 이유로 이를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822년에 그가 모르는 사이에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고 전해진다. 1826년에는 로열 메달을 수상했다. 1818년에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통신회원으로 선정되었고, 1830년에는 사망한 데이비를 대신하여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 되었다.

1833, 총리 찰스 그레이(Charles Grey, 1764-1845, 영국의 정치가. 1830년부터 34년까지 수상 역임)는 돌턴에게 150파운드의 연금을 수여했고, 1836년에는 300파운드로 증액했다.

 

돌턴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으며, 친구도 적었다. 그는 25년 이상 친구인 W. 존스(W. Johns, 17711845, 교회 목사이자 식물학자. 화학자, 물리학자, 기상학자)와 맨체스터에서 함께 살았다. 해마다 호수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때때로 런던을 방문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맨체스터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1822년에는 파리를 방문해 당대의 과학자들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