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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가나

간천(澗泉) naganchun 2012. 6. 4. 04:18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가나

 

 

 

 

여기 저기 둘러봐도 사방에 고층건물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슥삭 슥삭’ 몇 달 만에 ‘뚝딱!’ 랜드마크가 들어선다. 스카이라인이 달라진다. 지번이 바뀌고 거리명도 바뀌고 온갖 낯설어진다.

 

수액이 나무 곳곳으로 자양분을 나르듯 고층아파트 위 아래로 엘리베이터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 엘리베이터가 가지 못하는 좌우이동은 계단 없는 평평한 에스컬레이터(콘베어벨트)가 해 준다. 요샌 정말 기계들이 부지런하다. 한류스타 뺨치게 바쁘다.

 

아파트 재개발이 한창이다. 몇 십 년이 된 아파트나 오래된 상가 밀집지역은 물론이고 십 수 년 밖에 되지 않은 곳들도 재건축이 진행중이다. 연일 불도저와 굴삭기와 포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이 개미처럼 일하고 있다. ‘트렌스포머’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작동기계들의 대활약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도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는지 컨테이너박스에 ‘00아파트재건축추진조합사무실’이 관리동 옆 공터에 자리 잡았다. 몇 년 동안 집주인들을 불러들이고 설명회를 하고 회의를 하고 조합장을 선출한다는 둥 방송이 연일 시끄럽더니 몇 달 전에는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회사인 포스코 ‘더 샵’, GS의 ‘자이’, 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 롯데건설 ‘캐슬’ 등 4개 회사가 대형 홍보천막을 만들고 홍보전을 펼쳤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그 곳을 들락거리고 해당사의 판촉사원들이 자사 로고마크가 새겨진 쇼핑백을 들고 분주히 왔다갔다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우리집에도 홍보아줌마가 찾아왔는데 주인집하고 연락이 안 된다면서 알려달라고 들렀단다. 그러면서 그 익히 보던 쇼핑백을 건넨다. 그 안에는 크리넥스 티슈통이 들어 있었다. 사은품이라고 한다.

아 이런 물건이 들어있었구나.. 엄청 거창하게 보였는데.. 아니다 휴지도 어딘가…

그야말로 요긴한 물건이다. 그러더니 한 곳씩 홍보부스가 철수를 하더니 한 곳만 남았다.

그 회사가 재건축 개발회사로 지정되었나 보다. “00의 랜드마크가 되겠다”, “00주민의 충실한 의견을 반영하여 멎진 아파트를 지어 재산을 증식시켜주겠다”고 당선사례 현수막이 나부낀다. 이렇게 재건축 작업은 그 수순을 밟아나가게 되는가 보다.

 

 

그나저나 나는 걱정이다. 나무들이 걱정이다.

40여 년?이 되는 이 아파트단지의 정말로 아날로그 감성이 풍부한 정겨운 풍광들이 없어진다. 이곳이 그 ‘멀대’ 같은 스마트하고 말쑥한 아파트로 바뀐다니..

아직 몇 년 뒤에나 땅을 파기 시작할 일이지만 이제부터라도 단지 내 곳곳을 사진에 담아두어야 하겠다. 나는 이곳의 마지막 세든 사람이 되는 건가 보다.

 

그나저나 이 아파트 5층보다도 더 높이 자란 이 나무들은 다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큰 나무가 아니더라도 이 아파트 단지를 곳곳을 가득 채워서 숲 속을 방불케 했던 이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가?

 

봄의 꽃을 보여주고 초록으로 눈을 선하게 해주고 그늘이 되어주고 설악산까지 가지 않아도 남부럽지 않았던 그 가을의 단풍과 정취는? 발아래 몇 센티미터로 쌓이는 은행나무 잎의 푹신한 카페트를 걷는 느낌은? 겨울은 또 어떻고..

 

 

이 나무들을 제발 소중하게 잘 이식해서 좋은 곳에서 살게 하다가. 다시 이 곳 아파트가 완성이 되면 여기에 그들을 모셔오면 안되려나? 그들도 이 아파트의 주인들만큼이나 엄청난 프리미엄을 가진 존재들일 텐데…

 

제발 부디 이 나무들을 한 그루 한 그루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부분까지 생각한 건설사를 조합원들은 선택한 것이겠지? 당신들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건물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말이다.

 

더불어 지내 온 나무와, 그리고 아침이면 이곳이 정말 도심에서 가까운 곳인가 의심할 정도로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려주는 새들까지…

더불어 생각해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욕심일까?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가나? 나는 어디로 가나? <e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