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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거울과 유리창

간천(澗泉) naganchun 2012. 10. 8. 05:09

 

거울과 유리창

 

 

우리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고 옷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거나 각자의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된다.

집집마다 거울 한 두 개씩 없는 집이 없다.

경쟁이 치열한 세상 속으로 나가기 전에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내가 밖으로 나가도 다른 사람들 보기에 우습게 보이지 않고 대체로 괜찮은지 확인을 한다. 바깥세상은 온통 나의 허물을 들추려고 아우성인 곳인 양 자신의 외양을 무장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때문에 흠 잡히지 않으려고 거울을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거울을 통해서 나의 본질인 마음의 모양을 알아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울은 나를 확인하는 단방향 커뮤니케이션 같다.

 

어떤 사람들은 ‘거울’ 보다는 ‘유리 창문’을 자주 들여다본다. 유리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서 대체로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파악한다. 그리고 유리 너머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날씨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서도 유리 창문이 필요하다. 유리창문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인간관계는 온통 커뮤니케이션 난장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은 오픈마인드이다.

열린 창을 통해서 자기도 내보이고 상대방의 마음도 열게 해서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자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취지.

 

거울을 보면서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애매해질 때, 자신의 마음이 혼란할 때, 보이지 않는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유리 창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남의 상황과 모습과 행동과 삶의 모습을 통해서 타인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나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자신의 중심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주변을 통해서, 내가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통해서 말이다.

 

유리 창문을 들여다보는 것은 거울만 보는 것보다는 덜 비겁한 느낌도 든다. 남도 보고 나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래야 오픈마인드다. 그래야 정당하다. 내가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발전하는 사람들이어야 나도 그 무리에서 살아가는 보람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도 저들을 성숙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유리 창문이 되어야 한다. 거울로 차단해서는 안 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예수님과 소크라테스를 본받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한다.

 “네 자신을 알라.”는 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거울을 들여 다 보아라.” 라고 역설한 것 같지만 실상은 “유리 창문을 보아라.” 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요즘 세상은 많이 오픈되고 투명해졌다.

그러나 요즘의 유리는,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유리 창문들이 대부분이다.

현대인들은 모두 거울은 아니지만 단방향 유리로 차단하고 일단은 투명한 척 하면서 반쯤 차단을 하고 산다.

최소한의 방어벽을 치고 말이다. 마치 자신과 타인에 대해 교묘한 속임수를 쓰는 느낌이다.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뜻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 세상이 아쉽다. <e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