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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감상/한국한시

絶句(절구)

간천(澗泉) naganchun 2009. 12. 3. 04:24

 

絶句(절구)

 

 

고려- 최충/崔沖

 

 

  -절구-

  촛불 켜지 마라, 뜰에 달빛 가득하고  

손님 부르지 마라, 자리에 산 빛 드네.  

거기에 다시 솔거문고가 악보 밖을 타나니  

다만 혼자 즐길 뿐, 남에게 전할 수 없네.

 

  滿庭月色無烟燭(만정월색무연촉)  

 入座山光不速賓(입좌산광불속빈)  

 更有松弦彈譜外(갱유송현탄보외)  

只堪珍重未傳人(지감진중미전인)

 

*만(滿)-가득 차다. *정(庭)-뜰. *연(烟)-연기. *촉(燭)-초. *좌(座)-자리. *속(速)-빠르다. *빈(賓)-손님. *속빈(速賓)-손님을 부름. *송현(松弦)-소나무에 바람이 불어 거문고 소리가 남. *탄(彈)-타다. *보(譜)-악보. *지(只)-다만. *감(堪)-견디다. *진(珍)-보배. *중(重)-무겁다. *진중(珍重)-소중히 함.

 

감상

 

뜰에는 연기 없는 촛불인양 밝은 달빛 가득하고, 산그늘이 드리워 있으니 구태여 손님일랑 부르지 말라. 게다가 소나무에 드는 바람이 악보 없이 거문고를 울리니 이 정경을 나 혼자만이 알겠구나.

달빛이 연기 없는 촛불이 되고, 산그늘이 손님으로 찾아오고, 소나무가 거문고를 타는 자연에 몰입한 동양화 같은 풍경과 은둔한 도사의 심경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작자

 

최충(崔沖)(984-1068)  

고려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 월포(月圃) 방회재(放晦齋). 시호 문헌(文憲). 1005년(목종8) 문과에 장원, 1011년(현종2) 우습유(右拾遺)가 되었다. 1013년 국사수찬관(國史修撰官) 때 태조에서 목종까지의 <칠대실록(七代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1033년(덕종2)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등을 지내고 1037년(정종3) 참지정사국사수찬관(參知政事國史修撰官) 때 <현종실록(顯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1041년 서북로병마판사(西北路兵馬判事)로 나가 영원(寧遠) 평로(平虜)에 진을 치고, 산성개수(山城改修)를 감독했다. 1047년(문종1)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서 법관들에게 율령(律令)을 가르쳐 고려 형법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1050년 서북면도병마사(西北面都兵馬使) 때 농번기(農繁期)의 공역(工役) 금지와 국가 재정의 낭비를 막도록 상소하여 시행했고, 동여진(東女眞)의 동태를 파악, 국방을 강화하는 등 업적을 쌓고 1053년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나이가 많다고 사직을 상주하자 만류 조서가 내려지고 추충찬도협모동덕치리공신(推忠贊道協謀同德治理功臣)의 호와 개부의동삼사수태사 겸 문하시중상주국치사(開府儀同三司守太師兼門下侍中上柱國致仕)라는 훈작을 내렸고, 1055년 내사령(內史令)을 삼은 후 다시 추충찬도좌리 동덕홍문의유보정강제공신(推忠贊道佐理同德弘文懿儒保定康濟功臣)이라는 호를 내렸다. 벼슬에서 물러나 송악산(松岳山) 아래에 사숙을 열고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이를 문헌공도(文憲公徒)라고 했는데, 12공도(公徒) 중의 하나이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추앙받았다. 처음에는 정종의 묘정(廟庭)에, 후에 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해주 문헌서원(文憲書院)에 제향되었다. <귀법사제영석각(歸法寺題詠石刻)>(개성)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居頓寺圓空國師勝妙塔碑)>(원주)<홍경사개창비(弘慶寺開創碑)>(직산) 등의 글씨가 남아 있고, 저서에 <최문헌공유고(崔文憲公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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